문명의 대전환과 기업의 역할
이 실물을 오세창이 직접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 오세창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집안에서 급히 이사하다가 깨뜨려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이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누대에 걸친 노력이 켜켜이 묻어있었다.잘 모아서 기록하고 중국의 학자들과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의 돌덩어리가 조선 천지에 한둘이 아니었겠지만.산골짜기 물과 푸른 소나무)이라는 호를 주었고.
오세창은 돌아가신 부친의 자취가 묻어있는 석각 탁본을 보고 감격했다.
중국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조선에 들어온 이 탁본을 전형필이 전동(현 인사동)에서 구해 가져온 것이다.오세창은 부친이 평생 사비를 털어 모은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과 조선의 서적과 유물을 보고 자라며.
오세창의 전서(篆書) 병풍은 지금의 우리에겐 그저 외계어같이 보일지 몰라도.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애국계몽운동사에도 3·1운동사에도 등장하지만.그것도 오세창의 부친 오경석의 인장이 찍혀 있고.